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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극으로 인해 미화 된 인물[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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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으로 인해 미화 된 인물 명성황후


우선 그가 미화된 사극 KBS 특별기획 드라마 명성황후의 링크를 따라 들어가보자.


http://www.kbs.co.kr/end_program/drama/myungsung/


대문에 화려한 외교술과 뛰어난 지략, 조선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이끈 위대한 철의여인 명성황후 로 표현 되어 있다.


우선 명성황후가 국모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과정을 보면 대원군의 역활이 컷다.


고종 이전에 세도정치에 의해 왕권이 힘을 쓰지 못하자, 대원군은 비교적 외척이 적은 민비를 대원군의 부인의 천거로 왕비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흥선 대원군과 정치적으로 대립을 하였느냐...


이유는 그 당시 사람들만 알겠지만서도.... 궁녀에서 태어난 왕자이자 서자 완화군에 대해서 대원군이 편애를 하였다고 한다.


이를 문제로 세자책봉에 대하여 고심하던 찰나 남인과 북인의 세력간의 정치적 갈등을 더하게 되면서 치고 박고 싸우는데..


결국엔 대원군이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며, 다시 집권하고, 이를 반복하게 되면서 둘의 사이는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그렇다면 ksb 명성황후 사이트에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는 말들.. 화려한 외교술과 뛰어난 지략


과연 그러했을까?


명성황후는 대원군이 실각하자, 민씨 친족들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했으며,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개화 정치에 불만을 품은 위정척사파와 임오군란으로 흥선 대원군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자, 이번엔 청나라에 군사적 개입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시기로만 봐도 1876년(강화도 조약)~1882년(임오군란) 6년 사이에 일본과 청나라를 국내에 군사를 주둔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된다. 이 후에는 갑신정변 때 청나라에 도움으로 잠시 빼앗긴 정권을 장학하게 된 후  청.일 전쟁이 일어 나게 되는데 이 전쟁이 어디서 일어나게 되는가... 바로 한반도에서 두 나라가 치고 박고 싸우는 계기를 만들게 한 장본인이 명성황후다.


당시 상황은 우리 나라도 천천히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고 있던 시기이다. 세도 정치로 인하여 매관매직이 성행하였으며, 이로 인해 사회 계급이 무너지고 있었으며, 농민들은 예전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에 비해 사회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분명한 것은 어느 나라와 똑같이 근대 사회로 들어가고 있던 시기에 외세가 개입함으로서 식민 사회로 갔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회가 매관매직이 성행하고, 관리들이 부패하고, 농민들이 불평 불만을 가졌을까?


이런 자료는 그 때 당시 권력을 누가 쥐고 있었으며, 그 측근들에 대해서 알아보면 될 것 같다.



글을 쓰다보니 엄청 길어진다......힘듬...


간략하게 요약하면,


자기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청, 러, 일 외세를 개입 시켰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 내에서 열강들의 전쟁터로 만들었으며, 사회 혼란을 더 가중 시켰다.


다만 한나라의 국모의 자리에 있을 때 일본 낭인들에 의해 시해 되는 등 어처구니 없으면서 안타까운면이 없지는 않지만..이런 상황으로 보면 당시 조선의 사회가 얼마나 혼란스러웠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로 인해 일본인들에게 시해 되었다는 것만으로 그녀를 조선의 국모다. 조선을 위해 나를 희생하였다.라고 미화시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출처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이라는 곳에서 쓴 아주 오래된 책 및 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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